도종환, 유안진, 윤흥길 – 흔들림, 우정, 삶의 존엄을 담은 세 문학 이야기
1. 시 – 도종환 「흔들리며 피는 꽃」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며 피었나니…”
도종환 시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이 시는, 삶의 고통과 불안, 흔들림 속에서도 피어나는 존재의 아름다움을 깊고 조용한 언어로 그려냅니다. 그는 고통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며, 우리가 감내한 흔들림들이 결국 더 단단한 삶을 만든다고 말합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없듯이, 우리의 삶도 불안정과 불완전함 속에서 성장합니다. 시인은 고요하게 질문합니다. "그대는 지금 흔들리고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곧 피어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위로를 전합니다.
이 시는 특히 인생의 전환점에 서 있거나, 실패와 방황을 겪는 이들에게 따뜻한 격려가 됩니다. 고통을 축복으로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의 시야를 선사하는 이 시는,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삶의 통찰을 전해주는 진정한 '영혼의 울림'이라 할 수 있습니다.
▸ 감상
도종환의 시는 늘 사람의 내면을 꿰뚫는 힘이 있습니다. ‘흔들리며 피는 꽃’은 자연에 빗대어 인간의 삶을 노래하지만, 그 속에는 수많은 상처받은 이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우리가 삶의 위태로운 한가운데에서 이 시를 읽는다면, 그 위태로움마저도 존엄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2. 수필 – 유안진 「지란지교를 꿈꾸며」
“나는 지란지교(芝蘭之交)를 꿈꾼다.
들에 피는 난초처럼 은근하고 깊은 향기를 풍기는 친구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유안진의 수필 『지란지교를 꿈꾸며』는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따뜻한 글입니다. ‘지란지교’는 ‘지초(지), 난초(란)처럼 은은한 우정을 나누는 교분’을 의미합니다. 겉으로 요란하지 않고,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깊어지는 그런 우정을 저자는 꿈꾸고 있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인연을 만나지만, ‘서로의 마음에 뿌리를 내리는 친구’를 만나기란 쉽지 않습니다. 유안진은 말합니다. "내가 기쁠 때는 진심으로 기뻐해주고, 내가 슬플 때는 내 눈빛만 보고도 함께 울 줄 아는 친구, 그런 사람이 있었으면 한다"고.
이 수필의 진가는 그 소박한 문장 속에서 묻어나는 진심의 무게입니다. 자극적인 문장이 없는데도 읽는 이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힘. 그것이 유안진 수필의 매력입니다.
▸ 감상
이 수필을 읽고 나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듭니다. “나는 그런 친구였는가?” 우리는 언제나 좋은 친구를 바라지만, 나 자신이 그런 사람이 되고 있었는지를 돌아보게 합니다. 유안진은 단지 친구를 그리워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도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참된 우정이란, ‘주는 사람’에게서 먼저 피어나야 한다는 점을 말없이 일깨워주는 글입니다.
3. 소설 – 윤흥길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윤흥길의 단편소설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는 5·16 군사정변 이후 산업화의 물결 속에서 소외되고 짓밟힌 한 노동자의 인생을 응시한 사회비판적 작품입니다. 그러나 이 소설은 단순히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묵직하게 부각시킵니다.
주인공은 평범한 노동자지만, 자신의 일을 묵묵히 감당하며 살아가던 중, 직장을 잃고 삶의 벼랑 끝으로 내몰립니다. 그가 남긴 것은 단지 ‘아홉 켤레의 구두’. 사람들은 그것을 통해 그를 기억합니다. 말없이 성실하게 살아갔던 사내가 세상에 남긴 유일한 자취인 셈이죠.
이 구두들은 곧 그의 존재이자 노동의 결과물이며, 사내가 얼마나 열심히 살아왔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윤흥길은 이 ‘구두’라는 소도구 하나로 독자의 마음을 뒤흔들며, 인간의 삶은 결코 허투루 흘러가지 않는다는 진실을 전합니다.
▸ 감상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를 읽는 동안, 무명의 사람들이 생각납니다. 그들은 세상에 이름을 남기지 않았지만, 누구보다 성실하게, 묵묵하게 하루를 살아냈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들은 어떤 사라짐의 끝에서, 아홉 켤레의 구두처럼, 한 시대를 증언하는 삶이 됩니다.
윤흥길의 문장은 간결하면서도 깊습니다. 소설 속 인물은 말을 많이 하지 않지만, 그 침묵은 말보다 더 많은 것을 전합니다. “노동은 수치가 아니다.” 이 말을 이렇게 절절히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작품은 많지 않습니다. 특히 지금 시대에, 이 소설은 더욱 큰 울림을 줍니다. ‘보이지 않는 노동’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죠.
오늘의 문학 산책을 마치며
오늘 소개한 세 작품은 각각의 장르에서 삶의 본질, 관계의 아름다움, 인간의 존엄을 이야기합니다. 도종환의 시는 흔들리는 당신의 삶을 품어주고, 유안진의 수필은 마음을 데우는 진한 우정을, 윤흥길의 소설은 사회의 그림자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낸 존재의 자취를 보여줍니다.
이 세 작품을 마음에 품고 오늘 하루를 살아간다면, 세상은 조금 더 따뜻해지고 삶은 덜 외로워질지도 모릅니다.
다음 편 예고
마음을 울리는 시·수필·소설 추천 ③
● 시: 김춘수 「꽃」
● 수필: 이해인 「작은 기쁨이 내게 말한다」
● 소설: 김유정 「동백꽃」
감성의 결을 더욱 촘촘히, 마음의 이랑을 더욱 깊이耕하며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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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도종환, 「흔들리며 피는 꽃」, 『사람의 마을에 꽃이 진다』, 창비
유안진, 「지란지교를 꿈꾸며」, 『지란지교를 꿈꾸며』, 샘터
윤흥길,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장마』,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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